드디어 도착했다.
물건을 받기는 금요일에 받았는데, 주말에 경황이 없어 이제서야 바삐 사진으로 찍어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다.
크기는 생각처럼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종이 슬리브 구성이어서 카라얀 박스셋보다 1.5배 정도 큰 크기인거 같다.
박스는 두꺼운 종이로 되어 있으며 140여 페이지의 소책자 - 도이치 그라모폰의 역사를 소개한 내용과 함께 씨디들의 track list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 와 함께 종이 슬리브에 속지 없는 구성의 CD가 55장 들어있는, 생각보다는 단촐한 구성이다.
박스를 보면서 느낀 점은, 일단 저 빨강 바탕에 노랑 숫자는 예전에 비틀즈의 '1' 앨범의 디자인과 아주 유사하다는 점이다. 비틀즈 앨범은 EMI 에서 나온건데, 그냥 우연의 일치일까?
내용물인 CD 포장은 의외로 단촐하다. 물론 카라얀 박스셋처럼 얇은 종이에 표지도 없는 구성은 아니지만, 오리지널 커버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이의 질과 인쇄 상태가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내심 기대했던 입장에서는 좀 실망스런 부분이다.
앞면은 저런식으로 오리지널 CD의 표지를 그대로 갖다가 썼고, 뒷면은 CD에 대한 간단한 정보만을 담고 있다. 온전한 트랙 리스트는 함께 들어있는 책자에 수록되어 있으나 오페라나 합창곡의 경우 가사는 수록되어 있지 않아서 아쉬운 부분이다. CD 디자인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DG의 원래 디자인이 아닌, 박스 디자인과 통일화시킨 형태로 되어있어서 이 부분도 호불호가 갈릴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CD 선곡에 있어서는 DG가 나름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인다. 100년이 넘은 역사에, 클래식 음악계를 EMI 와 함께 양분하고 있는 거대 레이블의 입장에서 55장의 CD를 고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선곡해 놓은 것을 보면, 아주 오래된 히스토리컬 음원이나 모노 음원은 자제하고 50년대 이후 음원에서 주로 선택을 했으며, originals series로 복각되어 베스트셀링을 기록한 소위 '레퍼런스 음반'에만 치우치지 않고, 최근의 신예 아티스트들 - 랑랑이나 두다멜, 한 등 -의 음반도 고루 골라놓은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독주곡에서부터 실내악, 협주곡, 교향곡, 가곡, 오페라, 미사곡에 이르기까지 클래식 음악의 여러 장르를 담으려 했으며, 고음악에서부터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까지 여러 시대를 모두 담으려 한 점 또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애호가들에게 인기있는 명반들의 모음이라기 보다는 말 그래도 DG의 역사를 담으려 한 노력이 엿보이는 구성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작곡가의 안배나, 연주자들의 선택에 있어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누구나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박스셋의 목적이 ' 잘 팔리는 음반의 모음'이라기 보다는 'DG의 111년의 발자취의 모음'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느정도 이해를 해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렇게 주욱 늘어놓고 사진을 찍어보니,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거나 들어본 음반들이 절반 이상인데, DG는 아무래도 이 박스셋의 타켓을 누구로 잡고 기획을 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클래식 매니아들을 대상으로 한 기획이라기엔 사실 좀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고 - 고급스럽지 못한 슬리브의 인쇄 상태라든가, CD 구성에서 이미 겹치는 것이 절반 이상이 되버리면 구매 욕구는 상당히 감소하지 않을까 - 그렇다고 이제 클래식에 입문하려는 초심자를 대상으로 한 구성이라기엔 어딘지 모르게 조금 레퍼토리가 어렵다. 그렇다면 결국 DG는 '박스셋', '한정수량', '뭐뭐 기념'에 지갑을 열 수 밖에 없는 나같은 어줍잖은 클래식 리스너(지식이 방대하거나, 가지고 있는 CD의 양이 아주 많지 않은)를 타겟으로 노린 것이 아닌가 싶다. 함께 판매하는 6장의 컴필레이션을 보면 그 목적이 보다 명확해지는데, 이건 뭐 "그래, 그동안 유명하다고 들어왔던 음반들이 여기 몽땅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결정적으로 한정판이야. 이래도 안 살래?" 라고 하는 것 같아서 구매를 안할 수가 없다.
박스셋 개별 CD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 리뷰를 한다는게 불가능하고, 또 내가 그럴 실력도 되지 못하므로 그냥 죽 늘어놓고 사진 찍는 걸로 패스하겠다.
엄청 기대한만큼의 만족감은 주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박스셋 분명히 많이 팔릴거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발을 들여놓은지 얼마 안되어 한창 목마른 리스너들에게 이렇게 많은 탑프라이스의 음반 - 그중에는 구하기 힘든것도 있다 - 이 '날 들어주세요'하고 다가온다면 거부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다만 여기 구성된 cd의 2/3 정도를 이미 개별 음반으로 가지고 계신 분이시라면, 호기심으로 사시는 일은 하지 말아주시길. (그냥 원래 가지고 계시던 쥬얼 케이스의 음반을 듣게 될 가능성이 100%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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